해의 온도가 낮아질 무렵, 듬성듬성 나 있는 나무덕에 아래쪽 지대보다 햇살을 많이 받고 있는 동굴 앞, 화려하게 수 놓인 연분홍 꽃신이 발을 디뎠다. 고동색 머리를 땋아 자줏빛 댕기로 멋을 내고, 흰저고리에 풍성한 청록 치마를 한손으로 끌어안았다. 다른 손으론 앙상한 나뭇가지에 핀 봉오리를 만져보았다. 제각각 모양이 다른 가락지들이 낙월의 손을 치장하고 있었다. 한 손가락에 적게는 한 개, 많게는 두 개가 있는 가락지들이 도합 여덟은 되었다. 산 아래서 낙월의 정수리가 보일때부터 백호는 동굴 앞쪽에 나와 엎드려 있었다. 동굴 앞 일광을 즐기고 있었던 것 마냥 여유를 부리듯 꼬리를 살랑였다. 가뜩이나 치마 때문에 걸음이 느린 낙월이 풍월까지 감상하며 오니 더욱 애가탔다. 이내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감상..
고요한 산 속의 적막을 시도 때도 없이 깨는 가을. 버석한 낙엽에서 백호 한마리가 사냥꾼의 모습을 한 사내를 제 무게로 포박하고 있다. 사내를 향해 뱉는 백호의 호흡에 흔들리는 얇은 수염이 제 눈에 찔릴까 우려가 됐는지, 사내가 눈 한쪽을 질끈 감고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모습이 하찮다. 팔을 뻗어도 하얀 짐승의 어깨에도 닿지 않았다. 좀 전까지만해도 제보다 만만한 사슴에 화살을 박았던 사내였었다. 사냥감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이 속상해, 짐승때문에 거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서러워 코 끝이 찡했다. "첨으루 활을 잡아본 것인디....나꺼정 사냥 당헐줄은.....아니, 근데....이런 호렁이가 어찌 이써어..." 백호가 날이 선 이를 보이자 사내는 다른 쪽 눈까지 감아버렸다. 백호는 이제야 고개를 돌려 엉..
여우가 백호의 공간을 침범한지 닷새가 지났다. 백호는 여우가 없는 듯 제 할 일을 하러 다녔다. 눈 뜨면 나갔다 해 질 무렵 돌아왔다. 여우는 먹이 활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백호가 무얼 하고 다니나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는 못하고 냄새만 맡아 유추할 뿐이었다. 닷새동안이나 다른 짐승과는 달리 꼬리가 두개인 모습에 반응이 없자 혹 앞이 뵈지 않는가 싶어 두 꼬리를 흔들어도 보고, 바닥에 탁탁 쳐 가며 소리도 내어보았다. 이에 백호도 그의 꼬리를 바닥에 쳤다. 나름의 놀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귀도 먼 것이 아니오, 앞을 못 보는 것도 아니니...... 이는 필시 여우를 놀리는것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여우는 사족보행으로 아직도 꼬리로 바닥을 치고 있는 백호 앞에 섰다. "..이....
첫키스 옆모습을 탐하다마른 침을 넘기던 소리가 너무도 컸다방향잃은 눈동자와 뚫어질듯 응시하던 시선의 만남에흐르던 시간마저 잡혔다
삼각형들이 모인 검정색 꽃이 피었다. 기괴한 모양이 마력을 품었는지, 뿜어내는 향이 좋다. 이름 없는 마성의 꽃, 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