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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온도가 낮아질 무렵, 듬성듬성 나 있는 나무덕에 아래쪽 지대보다 햇살을 많이 받고 있는 동굴 앞, 화려하게 수 놓인 연분홍 꽃신이 발을 디뎠다.
고동색 머리를 땋아 자줏빛 댕기로 멋을 내고, 흰저고리에 풍성한 청록 치마를 한손으로 끌어안았다. 다른 손으론 앙상한 나뭇가지에 핀 봉오리를 만져보았다. 제각각 모양이 다른 가락지들이 낙월의 손을 치장하고 있었다. 한 손가락에 적게는 한 개, 많게는 두 개가 있는 가락지들이 도합 여덟은 되었다.
산 아래서 낙월의 정수리가 보일때부터 백호는 동굴 앞쪽에 나와 엎드려 있었다. 동굴 앞 일광을 즐기고 있었던 것 마냥 여유를 부리듯 꼬리를 살랑였다. 가뜩이나 치마 때문에 걸음이 느린 낙월이 풍월까지 감상하며 오니 더욱 애가탔다. 이내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감상에 젖은 낙월의 곁으로 갔다. 부푼 치마 옆을 살짝 누르며 밀착한 백호의 감촉에 낙월이 싱긋 웃었다. 햇살 받은 흰 털에 그어진 검정 무늬는 언제봐도 멋스러웠다. 낙월은 백호의 목부터 허리까지 쓰다듬었다. 여인의 고운 손길이 기분좋아 그의 덩치에 맞지않게 그릉거렸다.
"이런 날에만 찾아오는건 너무 속보이는것 아닌가"
"이런 날이니까 찾아오는 것이지.
내 누울 곳은 있는지, 주인은 잘 계신가...... 살펴보려구."
낙월은 아이를 달래듯 차분한 말투로 백호의 퉁명스러움을 받아쳤다. 그리곤 무릎을 굽혀 백호의 얼굴에 제 얼굴을 문대었다. 백호의 양 볼쪽에 있는 털이 특히나 더 폭신하여 살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그덕에 그의 얼굴은 눌려 일그러졌다.
"간을 취하지 않은것이 꽤나 오래 되었는데...... 대체 무슨 연유인가?
한 명 남았잖은가"
"내 생각만 하나보오? 기억이 제법인걸-
......막상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지금이 나쁜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저 인간인 것보다 요술을 쓸 줄 아는 편이 더 좋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일세"
팔자 편한 요괴다.. 라고 생각했다. 다른 구미호들은 저주받은 몸이 싫어 인간의 육신을 얻기위해 사냥하느라 바쁜데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는 낙월의 생각은 참으로 요상했다. 남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했던 낙월의 과거를 백호, 저만 기억하고있는 것 같아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아씨!! 낙월 아씨~!!!!"
산 아래서 올라오는 소리에 낙월은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머슴의 소리가 커지지 않는것을 보아 올라오는 길을 찾지는 못 한 듯했다. 이에 낙월은 쿡쿡 웃었다.
"그새 따라왔네. 예까지는 못 올 테지-"
"손이 좀 많이 가야말이지"
발걸음을 돌리는 낙월을 향해 백호가 볼멘소리를 했다. 낙월이 올라와서 한 것은 고작 꽃봉오리 만지고 간 것이 전부였으니 내심 서운했던 것이었다. 낙월은 이에 어여쁜 미소로만 답했다.
"저 아이가 마지막인가?"
"흐음,
저 아이만큼은 아닐걸세
내가 꽤 좋아하거든-"
"싱거운 농이로군.
그나저나 머리도 올리지 않았는데 아녀자의 의복이라니
....색이 탁해"
"의복을 마주할 일이 없는 백호 선생은 모르실테지.
의미를 부여하며 살다가는 미를 취하기 어렵다구.
내 보기에는 곱기만 하네-"
내려가면서까지도 한마디를 지지 않는 낙월이었다. 모처럼 보는 낙월의 한결같은 모습에 백호도 피식했다. 동굴 앞을 쬐던 빛이 이동하고 있었다. 백호도 동굴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허리를 굽혀 숨을 몰아쉬는 머슴 앞으로 천천히 낙월이 걸어왔다. 제멋대로 나 있는 나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머리끈 주위로 머리카락이 흐드러져 있었다. 이마를 동여맨 끈 아래로 땀줄기도 흘렀다.
"아씨, 이 산은 위험합니다요. 예로부터 덩치가 예사롭지 않은 백호가 산다는 소문이 있다구요!
조상이 호되게 당했다고 예부터 들어왔구먼요!."
"소문이 자자한 곳이라니 더욱 매력있구나.
네 걱정이 있으니 내 맘이 든든해, 무섭지 않구나."
낙월은 머슴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제 소매로 찍어 없앴다. 머슴은 벌게진 귀 뒤로 제 머리칼을 넘겨두고 마을로 향하는 낙월의 뒤를 좇았다.
마을과 같은 지대에 이르렀을 때에는 해가 주홍빛을 뱉으며 져가고 있었다. 산 초입에는 나무를 하는 사내들이 기구를 두는 광이 있었다. 마침 사내들이 일과를 마치고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이를 지나야 상점가와 가옥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머슴은 낙월의 빨라진 걸음을 추월하여 낙월 앞에 섰다. 호기롭게 막아섰으나 두 손을 비비적거리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 아씨, 사야헐것이 있는디...
아씨의 도움이 필요해서.....
......엄니것을....."
"......?
도통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만,
......근방이냐."
머슴은 고개를 위아래로 여럿 흔들어 답했다. 낙월은 고갯짓으로 머슴에게 길 안내를 시켰다. 머슴은 재빨리 발걸음을 움직여 산 방향으로 향했다. 머슴을 따르는 동안 낙월의 신경은 져가는 해에 가 있었다.
굳게 닫힌 광들이 모여있던 곳에 이르자 머슴은 문이 열린 광 앞에 섰다. 선선한 날씨에도 머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아씨, 잠시....
여서 보기루 했는디...."
"혹 어긋난 것은 아니더냐.
낼 같이 또 와보자꾸나.
해가 다 져가지 않느냐."
"아씨!.... 제발 잠시....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머슴은 낙월의 손목을 꼭 붙잡고 애원하다 광 뒤쪽으로 서둘러 사라졌다. 간절했던 손아귀에 손목이 뻐근했다. 낙월은 가락지들이 잘 있는지 손가락으로 확인하며 해의 끄트머리가 내려가는 것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해의 정수리가 꺼지고 보름을 맞이하려는데 갑작스런 어둠이 덥쳤다. 다부진 팔이 열려진 광 안에서 나와 낙월의 몸통을 뒤에서 휘감았다. 완력과 함께 낙월은 광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닫혀가는 문 새로 마을쪽으로 작아져가는 머슴이 보였다.
"종놈이랑 재미보기엔 아씨 체면이 있으니까,
건장한 사내 함 받아봐아-"
낙월의 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외에도 히죽대는 소리가 여럿 들렸다. 한 팔에 붙잡힌 몸통은 포승에 잡힌 마냥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낙월의 손이 떨렸다. 여러 사내에게 둘러싸여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런 일은 숱하게 당했었으니까. 그간 제를 섬겼던 머슴 중에서 가장 오랜 세월 정을 쌓아온 아이에게 통수를 맞은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닫혀가던 문을 바라보던 낙월의 눈동자가 노랗게 빛났다.
낙월을 포박한 사내는 맛을 볼 요량으로 입을 벌려 낙월의 목덜미를 핥았다. 주위로 사내들이 다가와 낙월을 애워싸고 몸에 손을 대었다. 한 사내가 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종아리와 허벅지를 쓰다듬자 낙월은 중심을 잃고 뒤에 사내에게 기대었다. 낙월이 제 몸에 닿자 달아오른 사내는 낙월을 포박하지 않은 다른 손을 저고리 안으로 넣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손가락 새로 가슴살이 튀어나왔다. 낙월의 앞에 선 사내가 저고리의 옷고름을 풀었다. 이어 저고리를 젖혀 동여맨 치마 끈을 풀기 시작했다. 평소 여인들이 묶던 방식과 달리 낙월의 것은 꽉 동여매져 있어, 푸는데 애를 먹었다. 낙월을 탐하는 저들의 숨소리에 낙월이 제 손가락으로 가락지를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동여맨 치마끈을 겨우내 풀자 치마자락이 낙월의 다리를 만지던 사내의 얼굴을 덮었다.
"거-참, 아래서 재미 보는데 방해하지 말라구-!"
히죽거리며 낙월에 다리에서 손을 떼고 치마를 치웠다. 광 문틈새로 들어온 만월 빛이 낙월의 다리를 비췄다. 사내가 헤벌쭉 입을 찢으며 매끈한 다리에 다가서는데 낙월의 다리를 따라 농도 짙은 핏줄기가 흘렀다. 곧이어 목덜미 살이 헤진 체로 낙월과 사내의 앞에 떨어지는 사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다부진 팔도 바닥에 굴렀다. 비명을 지르려 입을 떼면 소리가 나기도 전에 심장이 뚫렸다. 두 구의 사체를 곁에 두고 뒤로 엎어진 사내가 낙월의 노란 눈동자에 잡혔다.
"아..아냐!!!.. 난 말이지...!!!."
"인간의 정은 참으로 덧없고, 가볍구나.
......참으로 가벼워
......자네에게도 친히 내 정을 주겠다."
혈로 적셔진 낙월의 손이 사내를 관통하여 심장을 빼 내었다. 헐떡이는 심장을 바닥에 떨구고 손을 허공에 털었다.
문틈새로 들어온 빛이 낙월의 헐벗은 몸과 풍성하게 살랑이는 꼬리들에 닿았다. 낙월은 바닥에 있는 반지들을 하나 하나 정갈하게 끼워 넣었다. 반지를 낄 때마다 은색 꼬리가 구불거리며 사라졌다. 치마를 세게 동여매고 저고리를 걸쳤다.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훔치고 광 문을 열었다.
동굴 안에 은은하게 만월의 빛이 떨어졌다. 동굴 입구 쪽에 엎드려 있는 백호의 털이 빛을 받아 더욱 환하게 빛났다. 백호는 복슬한 발에서 발톱 하나를 빼어 바닥을 파고 있었다. 마을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크게 하품했다.
"정말 멋대로군. 만월인지 알면서도 안오는건 어디가서 멀끔한 자와 놀아난걸테지.
......밝히는 취미하고는......
팔미를 지녔다고 밖에 있을 정도는 된단겐가. 자만이 더 심해졌어. 정말이지......"
나머지 발톱들도 꺼내 바닥을 긁적였다. 살랑이던 꼬리도 재촉하듯 빠르게 허공을 휘저었다. 발 위로 흙먼지가 앉아 더러워졌다. 백호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부산스런 동작이 멈췄다. 낮은 자세로 몸을 일으켜 피냄새가 섞인 요괴의 향에 집중했다. 인기척이 저벅저벅 가까워졌다. 만월에 느낄 수 있는 스쳐가는 한낱 잡귀의 냄새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이빨을 드러내 공격 태세를 취했다.
산봉오리 경계 너머 정수리가 보였다. 인간 여자의 머리. 긴 머리의 부스스한 머리카락들이 달빛을 등지고 뻗쳐있었다. 동굴 앞에서 멈춰서는 인간의 형체.
"올 자가 나밖에 없는데, 서운한 걸-
모양새가 좋진 않아도 알아채지 못 할 정도라니.....!"
비웃음이 섞인 낙월의 목소리였다. 허나, 평소 백호가 알던 낙월의 기운이 아니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빛 닿는 곳을 피해 동굴 안으로 낙월이 들어왔다. 낯선 기운에 백호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낙월은 살짝 발걸음을 틀어 빛에 제 모습을 확인시켜주었다. 피로 떡진 머리칼,혈흔 묻은 낙월의 입 주변, 대충 묶어둔 저고리의 옷고름, 얼룩져 있는 한복. 낙월에게서 여러 인간의 피가 뒤섞인 냄새가 났다. 경계를 푸는 백호를 보곤 낙월은 쪼그려 앉아 붉은 저고리를 벗었다.
"누추한 차림이라 송구하네. 집안 꼴도 말이 아니라."
찬 웃음을 흘리며 낙월은 백호를 쳐다보았다. 백호는 잠시 낙월을 쳐다보다 낙월에 뺨에 제 볼을 대었다. 살갗에 닿은 폭신한 감촉에 편한듯 낙월은 눈을 감아버렸다. 볼을 떼지 않은 상태로 백호는 발톱을 넣어둔 앞발로 낙월의 오른손에 있는 가락지들을 빼었다. 볼을 떼어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백호를 보고 낙월은 반대 쪽 가락지도 빼 내었다. 낙월의 뒤로 여우 꼬리 아홉 개가 일렁였다. 빛을 받지 않아도 은빛으로 발광하는 풍성한 아홉 개의 꼬리. 상처가 있었던 꼬리도 제 본래 모습으로 성히 돌아와 있었다.
"새 식구일세.
......이름, 지어줄거지?"
살짝 올라가 있던 낙월의 입꼬리가 흐르는 눈물에 닿아 내려갔다. 백호가 본, 아마도 천년만의 낙월의 눈물. 그것이 갑작스러워 백호는 낙월을 눈물을 혀로 닦아주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구미가 된 그녀가 어째서 인간이 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낙월은 그런 백호의 뺨을 부드럽게 쥐며 말했다.
"살생을 하여, 그 희생으로 인간이 될 것이다.
......진실로 믿었던 것인가?
오래 산 자네도 모르는 것이 있군.
요괴는 인간이 될 수 없어."
"자넨...... 알고 있었나?"
".......팔미가 되었을 때."
백호는 말 없이 낙월의 손 주변에 놓인 가락지들을 응시하였다. 백호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낙월은 손을 뻗어 가락지들을 집었다. 주먹에 힘을 주어 으스러뜨렸다. 그러곤 손을 펴 가루들이 밤바람을 타고 날아가게 두었다. 뒤이은 낙월의 깊은 심호흡에 그녀의 꼬리들이 몸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이젠, 만월도 가락지에도 흔들리지 않아."
"......
기억을 지워주겠네."
"아니.
......과오는, 잊어선 안 되니까."
백호는 다문 입만 살짝 떼어진 체로 움직이지 않았다. 입 사이로 말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숨으로만 내쉬어졌다. 백호는 마주 앉아 있는 낙월 앞에 초승달 모양으로 누워 꼬리를 낙월의 손에 올려놓았다. 낙월은 백호의 몸통을 베게 삼아 누웠다. 양손으로 꼬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은은하게 퍼져있던 달빛은 가고, 쨍한 햇살에 낙월은 눈을 떴다. 상체를 일으킬 때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굳은 피에 엉켜있었다. 다시금 어제의 일이 생각나 머리카락 끝을 한동안 응시했다. 낙월의 잡념을 백호의 꼬리가 흐트러 놓았다. 낙월의 코앞에서 살랑이던 꼬리가 낙월의 코를 간지럽혔다. 고개를 돌리니 새 의복을 발 앞에 가지런히 놓은 백호가 동굴 입구를 등지고 서 있었다.
"조선에서 제일 고운 한복이라 했다."
낙월은 한동안 의복을 바라보다 일어섰다. 치마 끈을 풀어 제 몸을 따라 떨어트렸다. 백호는 고개를 홱 돌려 꼬리로 새 의복만 낙월 앞으로 밀었다.
곧, 백호의 앞발 사이를 지나 굴 밖으로 나서는 여우가 보였다. 풍성한 하나의 꼬리로 백호의 코를 간지럽히고, 햇살 아래서 밝은 갈색의 삼각귀를 쫑긋 세워 흐르는 물줄기 소리를 찾았다. 계곡으로 몸을 틀고 나서 백호를 향해 싱긋 웃었다.
"굴에 사는 여우에겐 맞지 않는 의복이야.
정말 암것도 모르는 아둔한 짐승 같으니라고."
여우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옛모습에 백호는 여우의 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못하였다.
"......여우에 비하면 항상 아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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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거의 일기네.
완전 날로 먹는구만-"
컴퓨터 모니터를 메우고 있는 글자들 앞으로 고양이가 불쑥 나타난다. 흰색 몸에 검정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가 마우스를 잡고 있는 낙월의 손가락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훈수를 둔다. 낙월은 키보드 위에 놓인 손을 들어 방해가 되는 고양이 목덜미를 집어서 자기 손 옆으로 치운다.
"실화 바탕이라고 하면, 믿겠어?
작가보다 역사 왜곡으로 더 유명해지겠네-
글 쓸 줄 모르는 괭이는 티비나 보시지?"
백호는 키보드를 밟고 컴퓨터를 가로질러 책상을 내려간다. 모니터 앞을 가리던 백호의 몸통이 사라지자 화면에 백호의 발이 적은 글들이 흐드러져있다. 낙월은 뒤로가기를 눌러 백호의 상형문자를 지워버린다. 단축키를 눌러 저장을 하고 의자를 돌려 백호를 찾는다. 날카롭게 공간을 훑는다. 통창으로 도심이 보이는 복층 구조의 원룸 오피스텔. 티비 앞에 있어야 할 백호는 보이지 않는다. 백호는 침대 위에서 낮의 햇살을 받으며 도심을 바라보고 있다. 낙월은 침대로 가 백호 옆에 엎드려 그의 머리를 손으로 긁어준다. 한 가닥으로 높게 묶은 머리가 낙월의 등을 따라 내려와있다.
"전래동화라고 생각할거야. 동물들이 나오잖아?"
"요괴가 사람을 죽여서 영생을 사는데?
공포잖아, 그거."
"성인용으로 바꿔야 할까."
"네 과거를 다 쓸거면 그래야하지."
도심을 내려다보는 백호가 낙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비꼬는 백호의 말투에 낙월은 아랫입술을 내밀고 힘을 주어 백호의 머리를 박박 긁는다. 불쾌하게 하악-소리를 내며 낙월 등 위로 올라타 발을 구른다.
고양이로 변모한 백호와 글쓰는 구미호 낙월. 그들의 오랜 동거 이야기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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