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구미호, 낙월

첫키스 옆모습을 탐하다마른 침을 넘기던 소리가 너무도 컸다방향잃은 눈동자와 뚫어질듯 응시하던 시선의 만남에흐르던 시간마저 잡혔다

감정기록 발앞으로 굴러온 공을 건내며 맞춘 시선순간은 기억으로 머물러 진득히 갈망한다 갈망은 넘치고 흘러 수로를 만든다호수에 합쳐지며 알았다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걸 거침없는 물살이 되어 흐른다썩지않고 쉼없이 헤엄칠 곳으로

유성 밤하늘을 바라보고 등을 기댄다 아프게 스치는 바람에 실려 지면으로 박혀있던 별 하나가 꼬리를 달고 진다 종착지는 같은데 너의 길은 외롭진 않아보인다 내던진 것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면 누군가의 소원으로 떨어지길

장례식 조그마한 존재의 거대한 승하 떠나기 전까지는 그대가 누구인지존재의 이유도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 않다 떠나고 나서야빈자리를 느끼고 흐느낀다 띄우는 곡소리는진심을 담고 있는가 여부를 모르는 채그대는 간다그대를 뒤로한 노래를 들어선 안된다 조그마한 존재의 거대한 승하 진실과 거짓에 뒤섞인흐느낌 가운데 홀로 조용히 그대를 보낸다

험담 입이 말한다손가락이 말한다 더럽다 더럽다 귀를 막아라눈 감아라 도망쳐! 입을 막아라손가락을 잘라라 더러운 것을 없애버려

지하철 굉음을 내며기분 좋은 바람과 함께 기다란 모습으로 다가온다 기다림 끝에 느끼는 바람이, 행복이 사라지고 나와 너 사이에 있는 것은바람이 흘러가고 나서야열리는 문

소나기 건조함을 달래는 촉촉함 파인 구덩이를 매운작은 호수 소음을 막아버리는 울부짖음 습기가 좋다네가 좋다 뒤늦게 번쩍이는 찰나의 빛 달리는 것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습기가 좋다 네가 좋다

백지 백지가 있다연필이 있다 자국 하나 없는 백지그리움을 채워보다 며칠 몇 년 마주하던형채를 희미하게 떠올리다 불투명한 용모가 흐드러진다 연필을 쥔 손이 백지를 향하다 자국 하나 없는 백지짭잘함을 내려놓는다 채울 수 없는 백지가 있다아무것도 끄적일 수 없는 연필이 있다